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제국군 (문단 편집) === 1차, 2차 군사개혁 === 러시아군의 포병 화력이 본격적으로 개선되던 시기였다. 1757년, 러시아의 귀족이자 장군인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Ivanovich_Shuvalov|표트르 슈발로프]](Петр Иванович Шувалов)는 [[https://en.wikipedia.org/wiki/Licorne|리코른(유니콘) 대포]]를 개발한다. 리코른은 당대의 대포들보다 더 긴 포신을 지니고 있었으며 원뿔형 약실은 장전하는데 용이하게 했다. 사정거리가 당대 서구 열강들의 대포와 비교했을 때도 길고 명중률도 정확한 선진적인 [[곡사포]] 체계였으며 [[그로스-야거스도르프 전투]]에서 [[프로이센군]] 기병대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었다. 슈발로프가 개발한 또 다른 무기체계인 [[https://en.wikipedia.org/wiki/Secret_howitzer|"비밀" 대포는]] 통상적인 대포와 달리 타원형의 포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는 수십~100여발의 포도탄을 한 번에 넓은 범위로 발사해 돌진해오는 적 기병대나 적 보병 진영을 싹 쓸어버리기 위해서이다. 당대에는 러시아군의 전략무기중 하나였던지라 말그대로 "비밀"이었고 평시에는 덮개로 포구를 덮어 이를 숨겼다. 이러한 기밀을 유출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그러나 장전속도가 느린 것이 약점이었으며 그 덕에 [[그로스-야거스도르프 전투]]에서 일부가 프로이센군에 의해 노획되면서 결국 그 "비밀"이 유출되어버렸다. 해당 대포들은 러시아 육군 연대에 야전배치되었다. [[알렉산드르 수보로프]]는 이 때 당시 뺄 수 없었던 러시아군의 명장이었다. [[플린트락]] 소총이 러시아 제국군에 도입되면서 러시아군의 화력이 향상되었으며 군대의 훈련 시스템도 개선되었다. 1763년에는 [[참모]]단도 창설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러시아 귀족에 대해 부과한 병역의 의무가 면제되면서 점점 러시아 귀족들은 병역을 기피하고 힘없는 농노들이 징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어찌되었든 당시 러시아 제국군은 두 차례나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면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1805년 당시의 러시아군은 약화된 상태였다. 하급 장교들과 보병들은 숙련되지 않았고 복잡한 기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덕에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대육군]]에 참패하고 만다. 이후 [[러시아 원정]]에서 러시아군은 특유의 넓은 국토를 이용한 프랑스군의 보급 약화와 대규모 병력 동원능력을 이용해 나폴레옹을 괴롭힌다. 극심한 보급난과 식량난에 수 많은 프랑스군 병사들이 탈영하거나 약탈에 몰두하느라 전선을 이탈했으며 심지어 휘하 장군들이 자기 부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게다가 찾아온 겨울의 추위는 안그래도 추위에 취약한 프랑스군을 제대로 갉아먹었다. 러시아 원정에서 막대한 병력을 손실한 나폴레옹은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러시아 제국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빈 체제]]의 중요한 일원이자 [[오스트리아]]-[[프로이센]]과 신성 동맹을 체결하고 유럽의 경찰 국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100만이 넘는 대병력을 지닌 러시아 제국군을 막아낼 유럽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았고 실제로 적지 않은 유럽인들은 러시아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